잠자리에 들기 전에, 오늘을 어떤 일이 있어나 돌이켜 봅니다.
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.
”‘믿음‘을 ‘갖지‘ 못한 분들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받아들일 수 없다.
한 편, ’믿음‘이 있는 분중에 다수가 성경을 ’이해‘하지 못하며 그저 ’받아들이는 것’을 ’좋은’ 믿음이라 평가하곤 한다. 그 몇 가지 예를 들자면;
- 자기의 딸과 동침하여 아이를 낳은 롯을 성경은 ‘의인‘이라 한다 (베후2:7).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.. 성경의 어느 부분에 롯이 의인임을 증거하는가?
- 자기 딸이 살아남을 보고 놀란(astonished) 부모에게(베전8:56) 예수님은 ‘믿기만 하라’ 하라는 명령과 함께 그 여자아이를 살리셨다. 그 부모가 가진 ‘믿음’은 ‘하나님께서 ’기뼈하시는 믿음’인가? ’믿기만 하라‘가 ’하나님의 선물‘인 그 ‘믿음’과 어떻게 연결되는가?
내가 이해하는 성경에 비추어 내 영적 나이는 십대정도 되는갑다.“
“전적인 믿음”과 “맹목적인 믿음”이 차이가 있다면 그 근본적인 다름은 어디에서 나올까요? “맹목적인 믿음”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증거로 셈해 주실까요? 마7:23의 “불법을 행하는 자들”의 ”믿음“과”“맹목적인 믿음”은 다른 것일까요?
찾아본 바로는, 예수님께서 “믿음을 보시고” 나서 기적을 행한 대상은 셋 정도 기억이 납니다. 하나는 하인의 고통에 대하여 예수님께 나아온 백부장이고, 다른 하나는 중풍병자를 달아내린 “사람들” 이었습니다. 또 딸을 위하여 “개처럼” 취급받은 한 어머니가 있지요. 병고침을 받기 위하여 밀려온 군중과 그 셋의 차이는 무엇일까요?
하나님께서는 “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” 하셨는데,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근처에 갈 수도 없고, 그를 가늠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그 ”거룩“을 따라갈 수가 있을까요?
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전혀 불가능한 것입니다.
언젠가 이런 질문들,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인가,에 대한 많은 답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. ”성령님의 인도하심”으로만 가능한 그 답들이 흘러나오는 그 자리에 있기를 소망합니다. 그것이 바로 “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”이 될 것이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.
우리는 주님의 끊이지 않는 중보안에 있기에 평안할 수 있습니다.
교회라는 끈을 단단히 키워가시는 예수님의 공로를 하나님께 감사하며, 그 주님 안에서 평강의 저녁 되시길 소망합니다.
댓글 남기기